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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이에이 2차 창작
-시라카와X카를로스
시라카와 카츠유키는 오늘이라고 직감했다. 그 남자가 오는 날이. 그는 한 달에 한두 번, 시라카와가 근무하는 약국이 문을 닫기 직전 뛰어 들어오는 손님이다. 사는 건 언제나 같다. 진통제, 파스 한 통씩과 닥터페퍼 한 캔. 연고와 반창고는 몇 달에 한 번 대량으로 산다. 어떤 때는 코나 입술이 터져있고, 어떤 때는 머리에 엉성하게 붕대를 감고 나타난다. 옷차림은 원래 간소한 흰색 트레이닝복. 그게 튈 정도로 진한 피부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러나 몇 번인가 피가 얼룩진 뒤로는 아예 빨간 트레이닝복을 입고 다니기 시작했다. 가끔 신발에 피를 묻혀오거나 다친 곳이 갑자기 터져 바닥을 얼룩지게 하는 건 번번이 싫었다. 이상한 직업의 손님을 일 년쯤 맞이하다 보니 생기는 일이었다.
그날도 그랬다. 그는 왼쪽 광대에 검붉은 피멍을 달고 한쪽 코에는 대충 거즈를 꽂아 넣은 채 가게로 들어왔다. 계산대에는 또다시 진통제, 파스, 닥터페퍼. 남자는 주머니에서 잔돈을 꺼내 계산을 치른 뒤 피가 멎은 코에서 빼낸 거즈를 한구석의 쓰레기통에 던져넣었다. 거스름돈 68엔이 머니 트레이에 찰그랑 떨어지는 소리와 순식간에 다시 터진 코피가 후드득 바닥을 때리는 소리가 화음을 이뤘다. 그 양이 꽤 됐기 때문에 시라카와는 안색이 창백해졌다. 당황한 두 사람이 휴지를 마구 뽑아서 코를 막고 바닥을 닦기 시작했다. 시라카와는 연회색 타일 사이로 스며든 자국을 보며 마감 전에 물걸레질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후후." 남자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뭐가 웃겨? 시라카와는 추궁할 뻔했다. 그는 휴지로 얼굴을 반쯤 감싸고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시라카와의 손이 멎자 힐끔 눈이 마주쳤다. 남자는 상황이 재밌다는 듯 웃으며 바닥을 전부 닦을 뿐이었다.
"감사합니다, 시라카와 씨."
상황이 마무리되자 남자가 약사 가운 위의 이름표를 검지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인사를 했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자신을 '카를로스'라고 소개한 남자는 얼룩진 손으로 구매한 상품을 챙겨갔다. 사과 대신 감사 인사를 건네는 여유로운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게 처음 나눠본 대화였다. 시라카와는 '봉투 필요하신가요', '잔돈 68엔입니다' 외에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그날, 일을 끝내고 가운을 벗으니 소매에 핏자국이 옮아있었다.
시라카와의 직감대로였다. 오늘도 카를로스가 가게 문을 빠르게 열며 들어섰다. 일전의 사건을 계기로 두 사람은 아주 가끔 말을 섞었다. 그가 프로 복서인 것도 알게 됐다. 분명 수상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돈을 받고 싸울 뿐 적법한 일이라고 했다. 설명을 듣고도 난잡해 보이는 건 여전했다. 판이 커지면, 보수가 커지고, 위험도 커진다. 아무래도 즐기는 것 같아서 시라카와는 관심을 끄기로 했다―그러려고 노력은 했다.
약국에 들르는 것은 경기가 있었던 날로, 경기가 잘 풀려서 다치지 않으면 오지 않았다. 복싱 체육관은 약국에서 네 블록 정도 떨어진 거리였다. 그 사이에 분명 약국이 하나 더 있다. 규모가 큰 데다 24시인데 왜 여기까지 오냐고 묻자 카를로스는 주인이 무례했다며 두루뭉술하게 넘겼다. 시라카와는 그 눈에 띄는 외모 때문에 화를 입은 것이라고 멋대로 지레짐작했다. 그리고 이내 자신의 무례함에도 진저리가 났다.
"약을 탄산이랑 먹으면 안 됩니다. 물이랑 드세요."
시라카와는 말을 섞는 게 내키지 않았으므로 그의 등에 대고 마치 통보처럼 말했다. 급할 때면 약국 문을 나서자마자 캔을 따서 약과 삼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카를로스는 그의 말에 그저 빙긋 웃을 뿐이었다. 그러고는 문을 나서자마자 보란 듯이 약을 탄산음료와 함께 먹었다.
시라카와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팔짱을 꼈다. 신경질적으로 손가락을 팔뚝 위에 두드리다가, 음료 냉장고를 열어 가장 아래 칸의 생강차와 닥터페퍼의 위치를 전부 바꾸었다.
기다리던 신보가 발매되는 날이었다. 시라카와는 점심시간에 짬을 내서 자전거를 타고 음반 가게로 향했다. 사거리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는데 적당히 먼 거리에서 자잘한 소음이 들렸다. 평소라면 한 귀로 흘렸을 외침이나 타격음에 고개가 살짝 들렸다. 좌측 맞은편 거리의 콘크리트 건물 2층, 낡았지만 규모가 제법 되는 복싱 체육관이었다. 초여름 기온에 창문을 전부 열어두어 소리가 끊임없이 새어 나왔다. 시라카와는 넋을 놓고 창문 안의 분주한 운동선수들을 바라보았다. "뭐 아는 사람이라도 찾는가 보네." 누군가 말을 걸어 풍경에서 깨우지 않았다면 따스한 햇볕에 땀이 맺히는 것도 모르고 바라보았을 것이다.
시라카와는 옆을 돌아보았다. 며칠 전의 멍이 빠지지 않은 얼굴로 똑같이 체육관 창문을 올려다보는 카를로스가 보였다. 트레이닝복을 챙겨 입는 경기 날과 다르게 러닝셔츠 한 장 차림이었다. 결이 잘 쪼개진 어깨가 조금 반짝였다. 손으로는 싸구려 복싱 잡지와 2L짜리 이온 음료를 요령 있게 들었고, 옆구리에 담배 한 보루를 끼워두었다. 낙타가 그려진 로고에 시라카와의 눈이 머물렀다.
"아, 이건…. 코치님 심부름."
눈길을 뒤늦게 의식한 카를로스가 답지 않게 놀라며 변명했다.
"누가 물어봤나……."
시라카와는 무시했다. 운동선수면서 관리를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일까 봐 걱정한 모양인데, 딱히 체면을 차릴 사이도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의 상식에서는 담배를 피울지언정 상처를 달고 살지 않는 사람이 좀 더 근사했다. 이상한 단골손님이 근사해도 별 의미 없지만.
"시간 있으면 구경하고 가요." 카를로스가 팔을 붙잡고 졸랐다.
"내가 왜요? 바쁩니다."
그렇게 딱 잘라 말하는데 어느새 카를로스와 같은 방향을 걷느라 다른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곧바로 가던 길을 돌리면 바보처럼 보일 게 뻔해서, 시라카와는 횡단보도를 끝까지 건넌 후 그와 방향을 달리했다. 그가 뭐라 말을 거는 참이었으나 듣지 않고 자전거에 올라탔다. 서두르지 않으면 업무 시간에 늦을지도 몰랐다. 시라카와는 음반 사는 것을 미루고 페달을 거세게 밟았다. 몸에 딱 맞는 흰색 셔츠가 젖어드는 걸 느끼며 여름을 실감했다.
월요일은 쉰다. 무료한 일상에 그나마 위안이라고 할까, 시라카와는 여가를 제법 즐기는 타입이었다. 물론 종일 만담 채널을 보거나 라디오를 듣는 게 전부라 남들 눈에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가끔은 나가서 서점이며 비디오 점, 영화관 같은 곳을 다녔다. 동네 취미 야구단의 경기를 볼 때도 있었다. 이번에는 며칠 전 카를로스와 마주쳐서 미뤄야 했던 신보를 샀다. 사운드가 묘하게 대중적으로 변해 취향의 스트라이크 존에는 엇나갔지만 못 들어줄 정도도 아니었다. 시라카와는 손님이 없을 때 들을 요량으로 출근하며 CD플레이어를 챙겼다.
가게에 들어서자 월요일에 근무했던 사장이 반겼다. 시라카와가 무뚝뚝하고 작은 목소리로 인사했고, 속으로는 '빨리 사라져'라고 생각했다. 사장이 무언가 떠오른 듯 가운을 챙겨입는 그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어제 누가 와서 시라카와 씨를 찾았어."
"누구요?" 묻자마자 머릿속에 스치는 얼굴이 있었다.
"외국인처럼 생겨서, 키가 엄청 크고 껄렁한…." 그래. 그 얼굴이었다.
"저를 찾았다고요?"
"나를 보고 원래 일하던 사람은 어디 갔냐고 묻길래 시라카와 씨는 월요일에 쉰다고 말했지. 얼굴이 다친 걸 보고 불량배인가 싶어서 놀랐는데, 역시 알려주지 말 걸 그랬나? 산 건 평범했지만."
시라카와는 대꾸하지 않았다. 역시 신경 쓰고 있었나. 이쪽은 딱히 기다린 적 없지만, 그쪽에서 기다렸다면 조금 불쌍하니까. 어차피 어떻게 설명한들 약국 직원과 약국 손님일 뿐이라며 그에 대한 생각을 치워버렸다. 어제는 또 얼마나 다쳐서 왔을지, 얼마나 느슨한 관계인지에 대한 생각도.
"빚지고 사는 거 아니지?"
사장이 분위기를 살피며 물었다. 뭘 상상하는지는 몰라도 신경에 거슬리는 참견이었다. 시라카와는 들리도록 한숨을 쉬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요."
아니, 시라카와 씨는 평소에 어떻게 사는지 전혀 모르겠으니까 말이야. 사장이 웃음으로 무마했다. 시라카와가 사장의 말에 웃어주는 일은 없었다.
마감에 가까워진 시간, 손님도 없이 한적했던 시라카와는 음료 냉장고만 멍하니 응시했다. 그 남자는 커다란 덩치를 숙여서라도 가장 아래 칸의 닥터페퍼를 샀을까? 이 주 전 사장에게 물어볼 수 없었던 것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못 본 지가 삼 주쯤 되었다.
그때 문종이 울려 고개를 들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시라카와는 내심 재미를 느꼈다. 조악한 로고의 캡모자가 먼저 보였다. 항상 포마드로 넘기면서 웬 촌스러운 모자. 익숙한 실루엣의 낯선 모습에 정적으로 의문을 표현했다. 오늘은 웬일로 눈인사도 건네지 않았다.
언제나의 가벼운 손길로 진통제, 파스, 그리고 생강차. 시라카와는 무심코 작게 웃어버렸다. '좋은 시도였다'는 표정을 보여주려고 얼굴을 마주하는데 나른하고 깊은 눈은 온데간데없었다. 오른쪽 눈꺼풀은 눈을 덮을 만큼 부었고, 제법 크게 찢어진 눈썹 주변의 상처 위에는 밴드가 거칠게 붙어있었다. 시라카와는 덧날 게 뻔한 꼴을 보고 바코드 찍던 손을 멈추었다. 그대로 손을 뻗어 모자를 벗기자 카를로스가 저지하려다 단념하고 한숨을 쉬었다. 터진 입술은 한숨을 뱉기도 까다로워 보였다.
"이리 와요."
한참 상처를 훑어보던 시라카와가 가게의 창고 쪽으로 손짓했다. 카를로스는 그저 멀뚱히 서 있었다. 시라카와도 버티고 섰다. 그러자 한참 만에 못 이기겠다는 듯 느린 발걸음이 창고를 향했다.
눈썹의 상처 위로 밴드를 떼고 봉합 테이프를 붙이는 동안 그는 얼굴을 살짝 비튼 채 가만히 기다렸다. 숨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운 거리에 두 사람은 호흡이 느려졌다. "음." 눈꺼풀에 연고를 바르자 낮은 신음이 흐른다. 그가 입을 여는 대신 눈을 뜨면 곧바로 시선이 맞닿는다. 시라카와는 원래도 사람과 삼 초 이상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그래서 고개를 돌렸다.
"저지 벗어봐요." 시라카와가 말했다.
"엉큼하긴."
카를로스는 쑥스러운 척 저지를 단단히 여몄지만 시라카와가 반응하지 않았다. 그는 이번에도 얌전히 지퍼를 내려야만 했다. 옷이 열리자 단단하게 짜인 상체 근육과 옆구리에 얼룩진 멍꽃이 드러났다. 땀 냄새가 조금 났고 복부가 천천히 오르내렸다. 부러지거나 터진 곳 없고 멀쩡한데…. 시라카와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다른 연고를 열었다. 손길이 다정해질 리 없는데도 카를로스는 엄살을 부렸다.
"아. 아파."
하얀 가운의 소매를 걷어 올린 팔이 붙잡혔다. 동작을 멈춘 시라카와가 잠시 손을 떨었다. 멍이 맺힌 살갗을 문지르는 것만으로 심경이 복잡해지는데 이 남자는 의뭉스럽게 엄지로 하완의 여린 살을 쓸어내렸다. 엉큼한 게 대체 누구냐. 신경질적으로 연고를 힘주어 펴 바른다. "윽!" 이번에는 엄살이 아니었다.
간단한 치료가 끝난 후, 시라카와는 진상 손님을 내쫓지 않았다. 어차피 곧 마감 시간이었다. 삐걱거리는 접이식 의자에서 숨을 돌리는 카를로스에게 그가 작은 병을 건넸다. 아, 생강차. 이번에는 카를로스가 크게 웃었다.
약국의 셔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닫혔다. 녹색 십자가 그려진 간판은 타이머가 고장 나서 여전히 밝게 빛났다. 가운을 벗은 약사는 멀지 않은 곳에 세웠던 자전거를 타고 후텁지근한 밤공기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엉망으로 지쳤으면서도 빠르게 자전거를 따라잡는 복서가 있었다.
계속 외면하려 했는데 잘 안 됐다. 이상하게 눈길을 끌어서. 하얀색이 더 잘 어울리는데 빨간색을 입어서. 약이랑 탄산을 같이 먹어서. 바보같이 체면을 차리려고 해서. 다치고도 웃어서. 시라카와는 자기 취향이 이상하다는 걸 이미 알았다. 그래서 친구도 애인도 없었다. 언제부턴가 세상에 딱 한 명, 자기만큼 취향이 이상한 사람이 있었으면 하고 줄곧 바라게 됐다.
건널목도 아니었는데 시라카와는 자전거를 세웠다. 카를로스가 크게 뒤처지지 않고 빠른 발로 따라왔다. 조금 숨이 가빠 보였다. 아마도 아침에는 깨끗하게 넘겼을 머리가 더욱 흐트러진 채였다. 약국에 두고 나왔는지 모자는 없었다. 시라카와는 잠시 그대로 기다렸다.
호흡이 가라앉을 때까지 두 사람은 눈을 맞추었다. 이번에는 삼 초가 넘었다. 카를로스가 자세를 고치는 척 걸음을 옮기자 무슨 용건이 있는 게 아니라면 어색할 정도로 가까워졌다. 관자놀이를 타고 땀이 흘러내려 간지러웠다.
그제야 입꼬리가 애매해서 알기 어려운 미소가 보였다. 눈매는 여전히 음울했다. 카를로스는 시라카와의 눅눅한 표정을 찬찬히 읽었다. 그는 그저 체념과 같이 사랑에 빠져있었다. 유감스러운 재난이라도 마주한 것처럼. 미지근한 습기가 둘 사이를 가득 채웠다. 카를로스가 입술을 적셨다. 혀끝에서 피 맛이 났다.
"이런 외모에, 이민 2세에,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삼류 복서인데, 호모라는 꼬리표까지 붙으면 곤란하겠지."
그렇게 말하는 카를로스는 모순적이게도 쾌활해 보였다. 얻어터진 입술이 예뻐 보이는 것과 비슷했다. 그 입에서 말이 이어졌다.
"그러니까 남자를 좋아하는 건 당신이 해."
그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시라카와는 말을 이해하는 데만 몇 초를 소모했다. 그러다 갑자기 돌변한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얼굴 위로 생기있는 짜증이 치고 올라왔다. 여태까지 집적거린 건 본인이면서, 뭐라고? 건방져도 너무 건방지다. "너 말이야." 시라카와가 목소리를 깔았다.
"이렇게 얻어터지는 거 보면 보잘것없는 실력이잖아. 삼류 복서 관두지 그래?"
중얼거리다시피 내리꽂힌 비난에 카를로스는 귀를 의심했다. 우리 방금 마음을 고백할 참 아니었나? 심지어 여태까지 건넨 말 중 가장 긴 문장이자 가장 감정이 실린 의견이었다. 시라카와는 그렇게 말하곤 다시 페달을 밟았다. 이번에는 따라잡지 못할 속도였다. 카를로스는 멍하니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연고를 바른 옆구리가 욱신거렸다.
이기는 날이 더 많은데. 안 맞는 날이 더 많은데. 이래 봬도 우리 체육관 간판인데. 그 모든 해명을 뒤로하고 카를로스는 그저 리듬을 타듯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실력이 좋은 복서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한 달에 한두 번, 약국에 들를 일만 생기면 되는 사이니까.
자양강장제 두 병이 계산대에 놓였다. 시라카와는 시계를 확인했다. 약국 문을 연 지 한 시간도 안 된 오전이 맞았다. 그리고 처음 보는 멀끔한 모습을 확인했다. 피부는 상처 하나 없이 깨끗했고, 머리는 한 올도 흐트러지지 않도록 깔끔히 넘겼다. 러닝하는 중에 들렀는지 짙은 뺨이 희미하게 상기되어있었다. 넉넉한 품의 스웻셔츠가 귀엽기까지 했다. 시라카와는 그 단정하고 수줍은 태가 조금 마음에 들어서 자존심이 꺾였다. 그래서 인사도 하지 않고 바코드를 찍었다.
"나 오늘 경기해." 카를로스가 넌지시 떠보았다.
"안 봐."
시라카와가 거절했다. 카를로스는 어쩔 수 없다며 빠르게 수용했다. 시라카와에게 계산된 음료 한 병을 내밀자 그것만큼은 순순히 받아들었다. 그럼 다음에. 작게 웃고 돌아서는 걸 시라카와가 불러세웠다.
모처럼 입술이 깨끗한데 놓치면 아까우니까. 카를로스는 갑작스러운 키스에 소스라치지도 않고 응했다. 누구 것인지 모를 입술을 핥았다. 혀끝에서 피 맛은 나지 않았다.
마음에 들어 하는 글이라 생각나서 백업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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