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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비지 타임 2차 창작

- 재유X승대

- 재승 재록본 <말하자면 너를>에 실린 상해님(t. @nigerungdayo)의 축전입니다♡ 웹에도 공개하고 싶어서 허락 받고 게시합니다. 제가 부탁드린 중학생 시절 재승을 써주셨어요 ^___^ 너무 좋은 글이니 제 글은 몰라도 축전만큼은 꼭 읽어주시길... ♡ ♡ ♡

 

 


 

 

중학교 2학년 겨울― 기말고사 마지막 날이었다. 오엠알 카드 매수를 헤아려 갈색 봉투 속에 담은 교사가 이제 움직여도 좋다는 말과 함께 교실을 나섰고, 마지막 과목이었던 수학의 정답을 서로 묻고 맞춰보느라 교실은 순식간에 왁자지껄 소란스러워졌다. 진재유는 손가락 사이로 빙글빙글 돌리고 있던 컴퓨터용 사인펜을 필통 안에 집어넣고, 책상 옆에 걸어둔 팀 더플백 매시망에 필통을 대충 끼웠다. 시험지는 반듯하게 두 번 접어서 필통 옆에 함께 끼우려다가, 잠깐 멈칫하고 더플백을 열어 구석에 밀어 넣었다. 수학은, 시험이 끝난 뒤 수업 시간에 시험지를 가져오지 않은 애들을 칠판 앞으로 불러내 빠따를 치곤 했다. 줄빠따의 경험은, 턴오버 한 번당 두 대씩 맞는 걸로 충분했다.

“승대.”

임승대는 덩치에 비해 좁은 책상에서, 잘도 몸을 구기고 자고 있었다. 소란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퍽 잘 잤다. 이래 잘 자서 키도 큰가. 공부도 안 하는 운동부가 칠판 가리면 안 된다고, 돌아가며 자리를 바꾸는 교실의 규칙 속에서 임승대와 진재유는 예외로 고정석이었다. 창가 가장 뒷자리가 임승대, 그 바로 앞이 진재유. 늘 돌아보는 건 진재유였는데, 출석 번호순대로 앉는 고사 기간만큼은 가나다순에 따라 임승대가 앞, 진재유가 뒤. 진재유는 손을 뻗어 승대의 등을 톡톡 두드리며 한 번 더 나직하게 이름을 불렀다.

“승대.”

“…어어.”

한 박자 늦게 돌아오는 대답. 아직 졸음이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어딘가 투정 같기도 했다. 어머니나 누나가 깨울 때도 이런 모습이려나 생각하자 슬그머니 웃음이 났다.

“인나라. 다 끝났다.”

본령이 울리자마자 오엠알 위로 한 줄, 두 줄 기둥을 좍좍 세우고 그대로 엎어졌던 임승대였다. 감독 교사가 돌아다니며 인적 사항을 제대로 기입했는지 확인하고 날인하던 순간 잠깐 눈을 떴던 것 외에는 줄곧 자고 있었다는 걸, 재유는 알고 있었다. 왁자한 소란 속에서도 꿋꿋이 잠을 청한 건 단순히 시험 문제를 풀 생각이 없었기 때문만은 아닌 모양이었다.임승대가 부스스 눈을 뜨고 아직 뚜껑을 닫지 않은 컴퓨터용 사인펜을 대충 쥐었다가 손에 묻어나는 검은 잉크에 아이씨, 작게 욕설을 중얼거렸다. 시험지를 대충 구겨 폐지함을 겨냥해 휙 던졌다. 그 모든 동작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음에도 모양 빠지게 폐지함 끄트머리에 맞고 튀어나왔지만. 재유가 킥킥 웃으면서 제 쪽으로 튕겨 나온 시험지를 집었다. 임승대는 한 번 더 아이씨, 중얼거리며 인상을 구겼다.

“리바 안 해주나.”

“니 방금 시험 뭐 봤는지도 모르나. 수학한테 빠따 맞을라고.”

글고 리바 잡는 건 니 일이재. 구겨진 시험지를 내밀자 임승대는 툴툴대며 주머니 속에 시험지를 쑤셔 넣었다. 컴퓨터용 사인펜 뚜껑을 닫아 재유에게 내밀곤 잘 썼다, 했다. 거의 사십오 분 내내 뚜껑이 열려 있었으니 어쩌면 반쯤 말랐을지도 모른다. 재유는 별말 없이 필통을 다시 꺼내 컴퓨터용 사인펜을 밀어 넣었다.

“농구부 니들 반장이 답 부르는데 채점도 안 하고. 니들 또 잠만 잤나? 벌로 청소하고 문 닫고 가라.”

종례하러 들어온 담임이 빈 책상을 앞에 두고 멀뚱거리는 둘을 보고 쯧 혀를 찼다. 교실에서 짧게 환호성이 울렸다. 기말고사 마지막 날 청소하느라 남들보다 늦게 가고 싶은 애들은 없었고, 평소 농구부 훈련으로 오후 수업을 빠지는 일이 많아 둘은 학급 청소 당번에서도 열외였던지라 정당한 처사라고 느끼는 듯했다. 재유는 수긍했지만, 승대가 부루퉁해지는 것을 알아차렸다. 필요 이상으로 잔소리를 듣기 전에 재유는 먼저 나서서 네, 대답했다.

기말고사도 끝났겠다, 아이들이 순식간에 빠져나간 교실은 금세 조용해졌다. 승대는 창문을 열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나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작게 구시렁거렸다.

“코트 닦는 것도 지겨운데.”

“그래도 훈련 시작 쫌 늦고 좋지 않나.”

“그건 맞다.”

좋아서 시작했고 여전히 좋아하는 농구지만, 늘상 재미있고 좋기만 한 건 아니었다. 시합이나 연습 경기와 달리 훈련은 힘들고 지루한 과정을 ―과장이 아니라 말 그대로― 토할 정도로 반복했다. 특히 얼마 전 중등부 연습 시합에서 잔뜩 깨진 뒤로는 시합이 중요한 게 아니라 니들은 기초가 부족하다며 학교 앞 언덕을 전력으로 달려 몇 번이나 오르내리는 강도 높은 훈련이나 지루한 기본기 훈련만 계속되고 있었다. 게임 형태의 훈련이라면 머릿속으로 이리저리 그려보는 멋진 기술이라든가 패턴을 시도해 볼 수도 있겠지만, 몇 가지 동작의 단순한 반복은 그럭저럭 구력이 붙었다고 자부하는 이들에겐 다소 지겹게 느껴졌다. 그건 진재유와 임승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라, 기말고사 기간 동안 잠깐 훈련을 멈췄다가 마지막 날 재개하겠다는 얘기에 오히려 시험이 반가울 지경이었다.

“여럿이 할 걸 둘이 하니깐, 좀 늦는 게 맞다 아이가.”

“맞지. 천천히 하자.”

삼십 개 조금 넘는 책걸상을 열 맞춰 정리하고, 부러 꼼꼼하게 책상 사이사이 틈새까지 쓸고 닦으며 한참 늦장을 부렸다. 재유는 빗자루를 쥐고 허리를 굽힌 승대를 물끄러미 보았다. 입학하고 나서 벌써 두 번째 겨울을 맞이해서인지 입학식 날 눈에 띄게 헐렁하고 엉성하게 큰 교복을 입고 있던 녀석들도 이제 초등학생 티를 벗고 중학생 티가 제법 나기 시작했다. 그런 애들 사이에서, 입학할 때부터 이미 웬만한 고등학생 정도의 키는 됐던 승대는 유독 이르게 어른이 된 것 같았다. 분명 임승대도 넉넉하게 교복을 맞췄을 텐데 발목 부분이 깡똥했다. 움푹 들어가 순발력 있는 발목이 훤히 보였다. 비 온 뒤 죽순처럼 하루하루 눈에 띄게 자라는 것 같은 임승대와 달리 성장세가 완만하게 떨어지고 있던 진재유는 어딘가 초조했던 것도 같다. 아직은 어깨가 떡 벌어지지도 않았고, 키가 불쑥 커 버린 바람에 팔다리에 붙은 근육도 듬직하다기보다는 아직 덜 자란 몸이구나, 알 수 있었지만 그런 걸 매일 옆에 붙어 지내는 또래가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았다. 어긋나 있던 눈높이가 어느 순간 더 비뚜름하게 어긋났다는 사실만 알아차렸을 뿐이다.

“니가 걸레 해라.”

승대의 손에서 빗자루를 뺏어 쥐며 제 손에 들린 대걸레 자루를 내밀었다. 물 차서 걸레 빨기 싫은데. 승대가 또 구시렁댔다. 니 허리 많이 굽히면 불편하니까.

“진잼민이한테 대걸레는 좀 크재?”

씩 웃으며 이쪽을 내려다 보는데, 그 시원시원한 웃음과 어딘가 나른하게 처진 눈이 여유로워 보여서 조금 또 심술이 날 것 같았다. 걸레나 퍼뜩 빨아온나. 진잼민, 이라는 친근함을 가득 담은 별명이 아무렇지 않았다가도 불쑥, 비딱한 기분이 들게 하는 요즘이었다.

 

물기를 대충 짠 대걸레 때문에 교실 바닥에 얼룩덜룩 길게 남은 자국을 뒤로 한 채 문을 닫아걸고, 열쇠를 교무실 열쇠걸이 마지막 빈 자리에 걸었다. 임승대랑 있으면 이상하게 별일 없이도 시간이 잘 갔다. 시시한 이야기밖에 안 했던 것 같은데 시간이 꽤 흘러 있었다.

“우리가 마지막이네. 빠따 맞지 싶은데.”

“담임이 벌 청소 시켰다 하면 된다 아이가.”

“맞나. 내 거짓말 잘 못하니깐 니가 해라.”

“완전 구라는 아니지 않나.”

“맞나.”

임승대는 제법 능글거릴 줄도 아니까 괜찮을지도 모른다. 확정된 지각에 재유 또한 체육관으로 향하는 걸음을 서두르지 않았다. 보폭이 큰 승대의 걸음도 평소보다 느렸다.

“재유.”

야, 진재유, 진잼민…. 진잼민이라는 웃기지도 않은 별명을 제멋대로 붙여 부른 뒤로는 진잼민이라 부르는 게 굳어져, 재유가 엄연히 제 이름인데도 어색했다. 어쩐 일로 잼민이 아니라 제대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어딘가 낯선 탓일지도 몰랐다.

“와.”

“니 주익 갈라고?”

불쑥 임승대가 물었다.

“와 그리 생각했는데.”

“니 필통. 그거 주익대 필통 맞다 아이가.”

아까 컴퓨터용 사인펜을 받아 넣을 때 본 게 신경 쓰였던 모양. 임승대는 남들 앞에선 시원시원한 듯 굴었지만 생각보다 섬세한 면이 많다는 걸 진재유는 알고 있었다. 생각도 많고, 꿍해지기도 잘하고.

“걍, 나 농구하니까는 지난번에 서울 갔다 온 친척이 사다줬다. 주익이 농구로 유명하다매, 하면서.”

“그럼 주익 아니면. 어디 갈라고?”

“아니다, 는 아이고. 가면 좋재.”

심상한 대답이라고 생각했는데 임승대의 기분이 바뀐 것을, 진재유는 알아차렸다. 엘리트 스포츠 길이 넓은 것도 아니고, 주익은 그중에서도 좁고 높은 문이라는 걸 농구 하는 애들은 다 알았다. 이쪽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주익이 농구로 명문인 걸 알 정도니 말 다 했다. 키 크니까 좋다고 데려와 놓곤, 코치는 승대가 연습 중 미스를 낼 때마다 키만 믿고 노력을 안 한다고 면박을 주곤 했다. 취미가 아닌 엘리트 스포츠는 보통 초등학생 때부터 시작하는데, 임승대는 그보다 좀 늦어서 중학생 때 스카우트된 경우였다. 농구에서 이미 압도적인 우위를 점할 수밖에 없는 높이― 신장 외에도 신체 조건도 좋고, 타고난 센스가 있어 곧잘 따라잡고는 있지만 풀타임을 소화할 만큼의 체력이나 요령이 아직 부족했다. 진재유 생각에는 그야 차근차근 해 나가면 극복 못 할 문제도 아니었지만, 초심자에게는 쌓여온 시간이라는 게 뒤집을 수 없는 벽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도 알았다. 임승대도 초조하구나. 불현듯 진재유는, 어긋났던 눈높이가 다시 익숙하게 돌아가는 것을 느꼈다. 내는 니만 훌쩍 가 버릴 것 같은데, 승대 니도 내를 그렇게 보고 있었나.

“니 요새 잠 잘 못 자나.”

“뭐?”

“아까도 계속 애처럼 잠만 자드만. 그래 고민이 깊어서 글나.”

“…밤에 다리 아파서 잘 못 자는 긴데.”

“성장통. 아직도 클 게 남았나. 부럽네.”

“……. 그럼 뭐하는데. 코치도 내보고 맨날 키 빼고 뭐 없다 하고.”

평소에도 곧잘 불퉁해지는 녀석이었지만, 오늘 유난히 구시렁거렸던 덴 다 이유가 있었다. 아마 못 잔 게 정말 성장통 때문만은 아니었을 거라고, 진재유는 짐작했다.

“주익 키 많이 본다는데. 승대 니는 키가 벌써 딱, 고등학생만 하니까는. 가지 않겠나.”

가서 나랑 투맨 해야재. 주먹을 꾹 쥐어 내밀자 임승대가 슬쩍 웃었다.

“맞지. 진잼민이 내 없으면 누구랑 투맨 뛰는데.”

“낸 누구랑도 잘 뛰는데.”

“니 진짜 재수없다.”

체육관 문 앞에서 손잡이를 쥐었다가, 재유는 손을 떼며 휙 뒤를 돌아봤다.

“승대.”

“와.”

“기말고사도 끝났는데, 놀러 갈까.”

“오늘 야간훈련까지 한다 아이가.”

문득 깨달았다는 듯이, 승대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니 주익 갈라믄 땡땡이 치면 되나.”

그렇게 말하면서도 입가에는 웃음이 실실 걸려 있었다. 어라, 요것 봐라 하는 웃음이. 진재유는 임승대의 그런 표정이 좋았다. 덩달아 번지는 웃음기를 누르며, 짐짓 태연한 어조로 대꾸했다.

“안 되면 서교든 준향이든 가지 뭐. 어디든 가겠재.”

“하기사 어디든, 농구 계속 하면, 맞지.”

“그니까 니나 잘 따라와라.”

어떤 신호도 없이, 교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발 밑에서 모래가 팍팍 튀었다. 뒤에서도 모래를 튀겨가며 쫓아오는 것이 돌아보지 않고도 느껴져, 재유는 턱과 다리에 더 단단히 힘을 주었다. 허파에 바람이라도 찬 것마냥 자꾸만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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