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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앙상블 스타즈 2차 창작
- 오리지널 캐릭터 비중이 큽니다
- 코가아도지만 CP 요소 희미함 (사귈 수도 안 사귈 수도…)
‘헤드 업 하이’ 기타리스트 야마자와 켄타 추도회.
쟈니홀. 9월 9일 23시.
저렴한 사양에 급하게 새로 뽑아 싸구려처럼 번들거리는 추도회 포스터가 지하 라이브 하우스로 내려가는 철문에 붙어있었다. 묵직한 손잡이를 잡아당기자 지독한 담배 냄새가 훅 끼쳤다. 코가는 싫은 내색을 하거나 기침을 토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이런 날에 피우는 담배는 향이나 마찬가지다. 망자에게 길을 일러주고, 영혼을 정화하기 위함이다. 그렇게 의식을 환기하며 화를 억눌렀다.
스타일만 조금씩 다를 뿐 똑같이 검은 옷을 차려입은 ‘언데드’의 멤버들이 좁은 계단을 줄지어 내려갔다. 백귀야행이 따로 없었다. 매표소에 들어서자 공연장 내부가 얼핏 보였는데, 일반인 방문객은 거의 없고 ‘헤드 업 하이’의 열렬한 팬이나 음악인 동료로 보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어울리지 않게 수수한 몇 명은 야마켄의 고향 친구들일 것이고.
“스도.”
“오오가미 선배, 와주셔서 감사해요.”
의연하게 방문객을 맞이하던 베이시스트 스도가 코가에게 인사를 건네며 목소리를 조금 떨었다. 스도와 드럼 무카이는 그들의 방문을 기대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잘나가는 아이돌이니 바쁠 것이고, 양대 간판 두 사람은 한두 번 정도 인사나 식사를 한 정도가 전부니까. 뭐라고 감사 인사를 해야 할까, 횡설수설 말을 이어가려던 입이 코가의 악수에 잠시 다물어졌다. 억센 두 손이 흔들리지 않고 허공에서 잠시 연결되었다가 놓였다.
“마사는?” 코가가 물었다.
이와이 마사키, 보컬이다. 헤드 업 하이는 같은 치바 출신의 야마켄과 마사가 함께 만든 밴드다. 스도와 무카이까지 모아서 완전체가 된 게 삼 년쯤 되어가고 있었다.
“무대에 켄타 물건을 장식하고 있을걸요.” 스도가 대답했다.
“오늘 노래해?”
“하려고 했는데, 기타 사운드가 비는 걸 들으면 못 참겠다 싶어서요.”
무카이가 조용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코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노래하다 울겠지, 그러면.
“코가 군.” 카오루가 조금 뒤에서 속삭였다. 코가가 공연장 내부로 들어서려던 참이었다.
코가는 까맣게 잊고 있었던 듯 황급히 재킷의 안주머니를 뒤져 조의금 봉투를 꺼냈고, 평소 밴드의 티셔츠나 고무 팔찌 같은 것이 올라갔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밴드 활동을 재개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 언데드의 멤버들이 모아서 내놓은 20만 엔이다. 카오루는 조금씩 더 부담하자고 했지만 정작 코가가 말렸다. ‘너무 무겁잖아. 힘들어할 때 다시 도우면 돼.’ 후배들을 잘 알고, 아끼는 사람이 내리는 결정이었다.
눈치 빠른 스도가 봉투의 무게를 알아채기 전에 네 사람은 공연장으로 들어섰다. 머리 위로는 담배 연기가 고여있고, 발치에는 슬픔이 무겁게 흐르는, 쟈니홀의 낯선 모습이었다.
오토바이 사고라고 했다. 물론 야마켄은 새벽에 질주나 저지르는 녀석이 아니었다. 다가오는 가을의 페스티벌 참가에 대비해 알바를 늘린 탓이다. 주취자들의 소란도 잠잠해질 무렵, 일을 마친 후 집으로 돌아가다가 뺑소니를 당했다. 도롯가에 처박힌 채로 삼십 분 정도는 살아있었던 것 같은데 그날따라 행인도 몇 없었다. 스쳐 지나간 술꾼 두어 명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주정뱅이겠거니 여겼다고 한다. 마사가 새벽 알바를 나갈 때가 되어서야 야마켄의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려 퍼졌다.은하철도의 밤…나는 이제 하늘의 저편으로 날아가 버리고 싶어요…그대를 생각하면서…. 야마켄의 마지막은 그렇게 발견되었다.
장례는 고향에서 가족장으로 치러졌다고 했다. 야마켄의 엄한 가족들은 평소 밴드 활동을 보는 눈이 곱지 않았던데다, 그의 죽음에 무슨 오해까지 있었는지 가족이나 마찬가지일 밴드 멤버들은 초대받지 못했다. 마사가 서러움에 가까운 분통을 터뜨리며 우리끼리 진짜 장례를 치러야 한다고 우겼다. 그래서 밴드가 신세를 지며 활동하던 쟈니홀을 빌려 이렇게 추도회를 치르기로 했다.
코가는 애도가 아니라 오기에 가까운 행동이라고, 약간은 냉소적으로 생각하면서 그들의 부름에 응했다. 다만 추도회가 가까워질수록 깨닫게 되었다. 언데드의 멤버 하나가 죽는다면 자신이 무슨 이상한 짓을 저지르더라도 말이 되리란 것을. 남들이 볼 때 어리석거나 부끄러운 행동이라도 진심 전력으로 표현하는 녀석들이 훨씬 성숙하다는 것을. 아끼는 후배의 죽음이 나흘째 되던 날 밤, 속이 쓰라려 잠들지 못하면서 절절히 느꼈다.
무대에는 기타가 두 대가 놓여있었다. 하나는 막 밴드 활동을 시작한 무렵 야마켄이 만 엔도 안 하는 중고 기타를 쓰기에 보다 못한 코가가 예비로 쓰던 것을 물려준 기타였다. 지나치게 낡아서 현대미술처럼 보였다. 하나는 야마켄이 알바를 세 개씩 뛰어가며 모아서 두어 달 전 마련한 새 기타였다. 얼마 되지 않았는데 스크래치가 많기도 많았다. 코가라면 그러지 않았겠지만, 그의 좋은 점은 거기에 있었다. 야마켄은 소리만 낼 수 있으면 만족했다. 모양새는 신경 쓰지 않았다.
눈이 매운 것은 담배 탓으로 돌리더라도 목부터 울컥 메는 것은 변명할 수가 없었다. 스물두 살. 차라리 선배였다면 존경심을 담아 전설이었다느니, 록스타는 죽지 않는다느니 하며 포장해 낼 수 있을 텐데 그러지도 못했다. 메이저 등용문이 열릴 듯 열리지 않은 미완성의 밴드였고 아직 이뤄낼 것은 많아도 이뤄낸 것은 별로 많지 않았다. 이번 가을 지역 축제의 헤드라이너를 하고 난 뒤였다면 조금은 다르게 느껴졌을까.
오오가미 코가는 메이저에 데뷔한 지도 꽤 되었고 아이돌로서 입지나 유명세도 확고했다. 음악을 시작한 것도 벌써 십 년이 넘어간다. 그러나 그도 이제야 스물 중반을 지나고 있었고, 이렇게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처음 보았다. 가족의 장례는커녕 사무소 이사님의 부인이라던가 몇 번 함께 촬영한 연로 배우의 화려한 장례식에나 가봤을 뿐, 이렇게 어설픈 추도회 따위 상상도 하지 못했다. 마사가 마이크도 없이 야마켄과 처음 만난 학창 시절 이야기를 시작하자 팬들이 훌쩍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저는 모범생이고 그 녀석은 문제아였으니까 대화 한번 나눠본 적 없는데, 가창 시험 때 내 노래가 좋았다면서 보컬이 되어달라고 부탁하는 거예요. 민요 부른 걸 듣고 록밴드를 하자고 하다니 정신 나간 놈이라고 생각했죠.”
울던 사람들이 조금은 웃었다.
“켄타에게 휩쓸려서 입시도 때려치우고 밴드를 만드는 데에 열중했는데. 사람을 이렇게 끌어들여 놓고 본인은 먼저 가버리다니.”
마사의 목소리가 떨렸다. 코가의 목울대가 겨우 한번 넘어갔다. 잠시 말이 멈추었고 모두 정적을 삼켰다. 마사는 갈라지는 목으로 노래를 시작했다.반딧불의 빛, 창문의 눈…
그들 밴드의 노래는 아니지만 모두가 아는 노래였다. 야마켄과 마사를 처음 만나게 한 교과서 속 민요였을 것이다. 역시 노래 없이 동료를 떠나보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야마켄을 떠나보내기 위해 쟈니홀에 모인 사람들은 마사의 노래를 따라 불렀다.
어느덧 세월도 흘러 삼나무 문을 열고 오늘 아침 헤어지네…
코가는 십 년 전 지은 언데드라는 유치한 이름이 처음으로 우습게 느껴졌다. 사람이 한 번 죽으면 정말로 끝이다. 우느라 노래를 잇지 못하는 마사를, 이렇게 염치없는 이름표를 달고 달랠 수가 없어서 한 걸음 떨어져 지켜만 보았다.
어수선한 추도회가 마무리 지어질 무렵, 코가는 맑은 공기가 쐬고 싶어 지상으로 올라왔다가 공기를 흐리는 연기에 인상을 썼다. 골목 그늘 아래로 익숙한 인영이 드러났다.
“금연한다며?”
“오늘만이네. 마음이 나약해져서.” 레이가 대꾸했다.
레이는 쇼비즈의 큰손들을 상대하다가 결국 나쁜 습관이 들었다. 술, 담배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스스로 풍미를 찾아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멤버들의 걱정과 비난을 샀다. 하지만 그가 담배를 피우는 것은 흡연이 ‘멋’이던 시절의 분위기를 자아냈고, 그가 술을 골라 마시는 것은 우아한 취미 같았으므로 결국 캐릭터로 녹아들었다. 그 무엇보다 멤버 사랑이 우선하는 레이는 코가의 첫 기침이 터져 나오기 전에 휴대용 재떨이에 담배꽁초를 구겨 넣었다.
“할아범 컨셉질을 할 거라면 이럴 때 조언이라도 해봐.” 배려에도 무심하게 코가가 시비를 걸었다.
“무슨 조언?”
“후배가, …친구가 죽었을 때는 어떻게 견디라든가.”
코가의 말이 점점이 아스팔트 바닥으로 떨어졌다. 레이는 솔직하게 서글픈 표정을 지어 보였다. 고개를 저으면서. 흔들리는 눈이 마주쳤지만 누구 하나 피하지 않았다. 젊은이들이 젊은 죽음 앞에서 헤매고 있었다.
“죽음에 관한 건 아도니스 군이 잘 알지. 의지하면 돼.”
“상처를 들쑤시란 말이야?”
“보이는 것만큼 강한 아이일세.” 레이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대책 없이 긍정적인 말이나 해서 속을 긁을 것 같은데.”
코가가 마음에도 없는 투정을 쥐어짰다. 그 녀석에게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이 고통을 헤아리는 슬픈 눈망울을 보고 싶지 않다.
“아도니스 군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걸 겪어왔어. 본인도 위로받은 적이 있으니까 믿어도 좋다네.”
레이가 민트 한 알을 입에 넣었다. 코가도 한 알 받기 위해서 손을 내밀었다.
결국 탈진에 가깝도록 울게 된 헤드 업 하이의 멤버들에게 무너지지 말고 버티라는 말을 남기며 코가는 몇 번 강하게 포옹해 주었다. 자신도 방법을 모르지만, 경험이 있는 선배의 가장을 하고 어딘가에는 답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주고 싶었다. 제일 아끼는 기타리스트 후배를 보내고 나니 남은 멤버들이 가슴에 가시처럼 박혀있었다.
차를 타고 돌아가기보다 밤길을 걷고 싶었으나 이런 기분으로 혼자 남기는 싫었다. 코가는 아도니스에게만 넌지시 물었다.
“좀 걸을까?”
아도니스는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애상에 잠겨있었으므로 평소처럼 미소 짓지는 않았다. 그에게는 어련히 코가가 털어놓고 싶은 마음이 있을 거라고 짐작하는 섬세함이 있었다. 코가는 그 이해심이 가끔 놀라웠다.
선배들은 스케쥴 때보다 지친 모습으로 차를 타고 떠나고, 시간은 두 시에 가까워져 상가 거리는 술집 한두 군데를 빼놓고는 가게들 모두 문을 닫고 텅 비어 있었다. 점점이 규칙적으로 늘어선 가로등만이 두 사람을 인도했다. 밤길에 서로 다른 발소리가 조금 울렸다.
코가의 머릿속에서는 여러 가지 물음이 흐르고 있었다. 눈앞에서 죽음을 목격한 적 있어? 가까운 사람이 죽은 적 있어? 사고로 죽는 것과 전쟁, 재난으로 죽는 것은 많이 다르겠지? 어린아이들을 묻어야 할 때는 기분이 더 참담해? 숙부가 수용 중에 돌아가셨을 때 고향 땅에서 혼자 어떻게 견뎠어? 너는 왜 나에게 의지하지 않았어? 아도니스, 너도 죽는 게 두려워?
고르고 골라도 그 안에서 꺼내도 되는 말은 없는 것 같았다. 코가는 침묵하다가 숨이 차서 몇 번쯤 새벽 공기에 한숨을 토해냈다. 우물쭈물하며 기분 하나 털어놓지 못하는 자신이 너무도 답답했다. 한숨이 다시 한번 터져 나오려는 순간 아도니스가 조심스레 그를 불렀다.
“오오가미.”
코가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만 살짝 틀어 시선을 맞췄다.
“봄에 야마자와에게 몇 번인가 밥을 사줬다. 오오가미가 작업실에 틀어박혀 손님 만나기를 거부했으니까, 매번 그냥 돌려보내기가 미안했거든.”
“그러냐.”
“야마자와가 조금은 오오가미의 흉을 봤지. 꼭 속세를 등지고 동굴에 들어가야 좋은 음악이 탄생한다는 법은 없는데, 선배는 참 고지식하다고 했던가.”
“…….”
“자신은 사람을 관찰하는 데서 영감을 얻는다며 나와의 만남을 기뻐하기도 했다. 나도 그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이 몸도 알아, 멍청할 정도로 좋은 녀석인 건….”
코가는 야마자와에 관해 이야기할 때 과거형으로 묘사할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야마자와가 오오가미를 처음 만난 날 이야기도 해주었다.”
어땠더라, 코가는 희미한 기억을 되짚어갔다. ES의 기숙사를 나와 독립해서 혼자 살 집을 구했을 무렵이었다. 동네 하천이 내려다보이는 주택가였다. 어느 날부터인가 오밤중에 끔찍한 통기타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는데, 열정을 치하해서 참아보려고 했으나 스케쥴 세 탕을 뛴 날에는 그것도 잘되지 않았다.
코가는 창문을 열고 소리를 질렀다. 시대가 어느 때인데 강변에서 악기를 연습하느냐고 화를 냈다. 조율이 약간 이상하다고 사족을 붙였던 것 같기도 하다. 야마자와는 상황 파악이 안 되는지 조율을 도와주는 애플리케이션 이름까지 물어보았다. 두 사람의 목청이 너무 큰 탓에 자전거를 타고 순찰하던 순경 한 명이 달려와 사태를 수습했다.
두 번 더 마주치고서야 야마자와는 상대가 언데드의 그 오오가미 코가라는 것을 알아챘다. 노래만 들었지 얼굴은 몰랐다고 했다. 박장대소하며 ‘겸손한 것도 정도가 있다’라고 적반하장으로 코가를 탓했다. 그러고는 기타를 잘 칠 수 있게 도와달라고 했다. 이상하게 거절할 수 없는 부탁이었다. 뻔뻔하게 나올 거라면 아침 일찍 우리 집 마당이라도 청소하라고.
“강변에서 번개 같은 외침이 들려서 돌아보았더니, 어둠 속 빛나는 창가에 기타의 신이 그림자를 드리우고 서서 자신을 다그치는 것 같았다고 했지.”
아도니스가 말하면서 빙그레 미소 지었다.
“정작 그렇게 말하는 야마자와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없었다. 그래서 그가 오오가미를 무척 존경한다는 걸 깨달았어.”
코가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후배가 선배를 존경한다는 뻔한 사실은 코가도 자각하고 있었다. 후배의 존경과 선배의 존중을 증명할 기회가 앞으로 수없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야마켄이 코가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몰래 동경을 드러내 보였다는 과거만 남았다. 아도니스가 가로등을 등져 어둠 속에 시선을 내린 코가를 마주 보았다. 그의 얼굴에 서늘한 빛이 엷게 올랐다.
“나는 그렇게 많은 죽음을 보았는데, 조금도 익숙해지지 못했어.”
아도니스의 목소리가 뜨거운 바람에 쓸린 듯 건조했다.
“이렇게 무방비로 맞이할수록 좋은 일을 더 많이 기억하고 싶다. 절대 잊어선 안 되는 소중한 일들이 많아. 그걸 슬픔으로 덮을 수는 없지.”
코가는 아도니스에게 아무런 질문도 하지 못했는데, 아도니스는 답을 내놓았다. 다시 목이 메고, 걸음이 멈췄다. 두 사람은 잠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건물 사이로 초승달이 걸려 있었다.
코가가 한참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야마켄은, 왼손잡이잖냐.”
“그랬던가?” 아도니스가 고개를 기울였다.
“젓가락질하는 걸 보고서야 알게 됐거든. 이 몸이 농담으로 지미 헨드릭스처럼 해보라고 했더니…그 녀석 몇 주 뒤에 진짜로 「Purple Haze」를 연습해 온 거야. 뭐 왼손 연주는 엉망이었지만, 볼만했지. 만우절 공연에서 퍼포먼스 하라고 부추겼어.”
“아아, 그 무대. 기억하고 있다.”
두 사람은 불시에 그 모습을 상상하고 웃음이 터졌다. 이마에 띠를 두르고 기타를 반대로 돌려맨 당당했던 야마켄. 코가가 걸음을 멈추고 그의 헨드릭스 흉내를 흉내 냈다. 로우 프렛에서 현란하게 손가락을 움직이며 기타 솔로를 끝내는 그는 우습기도 하지만 멋있기도 했다.
“난 웃음을 주는 밴드가 좋아.”
아도니스가 그렇게 말하고 헤드 업 하이 2집의 타이틀을 흥얼거렸다.
“이 몸은 싫어하지만, 나쁘다고 생각하지도 않아.”
코가의 목소리에 힘이 돌아와 있었다. 후렴구가 이중창이 되었다. 그야말로 추도회에 어울리는 노래였다. 암담한 기분으로 잠 못 드는 밤이 아니었다. 그날 꿈에서 코가는 얼핏 좋은 노래를 들었고, 그 멜로디가 일어나서도 계속되었다.
코가가 곱게 썼던 예비 기타는 야마켄의 손을 거치며 무참히도 낡아 있었다. 푼돈 받으려 길거리 공연하는 노숙자도 이것보단 멀끔한 기타를 쓸 것 같았다. 우레탄 피니쉬인데도 레릭을 한 듯 여기저기 벗겨지고 들떠 있었다. 고전적인 스트랫 쉐입에 선버스트 컬러가 거칠게 닳아있으니 그럴듯한 빈티지 기타처럼 보였다. 오래된 카페 테이블에 어울리기까지 했다.
“오오가미 선배한테 보여주고 싶어 했어요. 기타가 삭도록 연습했다는 거요.” 스도가 들뜬 모습으로 설명했다.
“그냥 관리를 소홀히 한 것 아냐?” 코가가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리자,
“제가 손질하는 거 도와줬어요. 볼륨은 부품이 안 구해져서 이 모양이지만, 넥 휘어진 건 곧 수리점 보내려고 했거든요.” 마사가 변명하듯 덧붙였다.
코가는 범생이 마사가 자신 만큼이나 꼼꼼히 악기를 가꾼다는 걸 알고 있다. 야마켄이 금방 망가뜨릴 물건도 마사가 열심히 공부한 대로 다듬고 고쳐서 좋은 소리를 내도록 만들었겠지. 코가의 손이 무수히 많은 스크래치가 지나 광택이 거의 사라진 픽가드를 쓸었다.
“이 몸이 이런 고물 기타를 왜 돌려받아야 하는데? 뽕 다 뽑았다는 거냐.”
애정 어린 손길과 달리 말투는 퉁명스러웠다.
“켄타의 물건을 나눠 가지고 있는데, 선배가 받아주셨으면 해요. 기특한 녀석으로 기억해 주세요. 안 그래 보여도 성실하고, 음악을 좋아하는 녀석으로요.”
드럼 무카이가 조용히 부탁했다.
“이딴 걸레 같은 기타 없어도 안 까먹는다고. 그 녀석의 끔찍한 연주는 평생 트라우마야.”
코가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기타와 마찬가지로 낡고 지저분한 기타 케이스를 닫아서 챙겼다. 마사와 스도, 무카이 세 사람이 안심한 듯 홀가분하게 웃었다. 몇 년간 코가를 따르더니 웬만한 악담에는 꿈쩍도 하지 않게 된 후배들이었다.
“그래서, 본론이 뭐야?”
코가가 커피잔을 들며 세 사람을 한 번 훑어보았다. 마사는 긴장으로 침을 삼켰다.
“이번 가을 페스티벌에 기타 자리를 채워주셨으면 해서요.”
“…….”
코가는 따뜻한 커피를 한 모금 삼키고 한참 대답이 없었다. 목에서 뱃속까지 까끌까끌한 느낌이 흘렀다.
“마사 네 녀석도 기타를 치니까, 셋이서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거 아냐?”
“아녜요, 사운드가 비어요. 아시겠지만.” 마사가 애절하게 이해를 구했다.
“세션을 부르면 되잖아. 이 몸은 바쁘다고.”
“그건 아는데…. 저희한테는 의미가 커서….” 무카이가 말을 더듬었다.
“내가 이제 죽고 없는 녀석 백업을 하는 게?”
코가가 정색하자 세 사람은 모두 입을 다물었다. 마사는 분한 표정을 숨기려고 애썼다. 어리석은 부탁이란 것쯤은 이 자리의 모두가 알았다. 하지만 무대 위에 빈자리를 두고 싶지 않다, 그렇게 어려운 부탁이 아니란 것도 알았다. 생각해 볼게. 상상만 해도 엄청나게 짜증이 나지만 말이야. 코가가 쏘아붙인 후 기타 케이스를 매고 카페를 나섰다.
그 얘기를 들은 카오루가 질린 얼굴을 했다.
“코가 군, 진짜 못됐다.”
“이 몸이?”
“그래. 그 애들은 그냥 빈자리를 의미 있는 사람이 채워줬으면 하는 거잖아. 그게 뭐가 나빠? 세션인 셈 치고 도와주면 될 텐데.”
코가는 슬쩍 주변을 둘러보았다. 점심시간의 사무소는 한적했다. 10년 차 아이돌이 선배에게 꾸중을 듣느라 쪽팔리는 상황은 면했다.
“힘들까 봐 방송 일도 빼줬더니. 곤란한 후배들을 내치려 들고 정이 없구먼.”
레이가 거들었다. 코가의 이마에 핏줄이 섰다. 그렇게 가볍게 말할 일이 아니었다.
“죽은 멤버 자리에 땜빵을 들어가봤자 아무도 안 좋아해. 연습하다 싸우고 파투 나지나 않으면 다행이겠다. 그 자식들도 합주하는 순간 깨닫게 될걸, 최악의 수를 뒀다고. 야마켄이랑 이 몸은 연주 스타일도 천지 차이니까!”
기세 좋은 변명에도 언데드 멤버들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아도니스가 입을 열었다.
“오오가미는 아이돌 활동만큼이나 세션 활동을 즐거워하지. 프로니까 기술적인 어려움은 없을 거다. 함께 무대에 오르는 건 그들에게뿐만 아니라 오오가미에게도 위로가 되지 않을까? 야마자와를 추억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만.”
코가가 눈에 띄게 멈칫했다. 아도니스가 어수룩한 얼굴로 은근슬쩍 치켜세우며 자신을 달래는 화법에는 정말이지 넌덜머리가 났다. 하지만 똑같은 방식으로 십 년째 당하고 있어도 어쩔 줄 모르고 넘어가는 자신이야말로 최강의 얼간이였다. 코가는 이를 갈며 말했다.
“5집 일정 미뤄지고 욕먹어도 모른다고.”
“저 건방진 아이 좀 보게나. 가르쳐뒀더니 이제는 작곡을 자기 혼자 하는 줄 안다네.”
레이가 카오루에게 우는소리를 했다. 코가는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레이에게 작곡 노트를 집어던졌다. 이번에야말로 스무 곡 채우기로 했잖아! 네놈이 메꾸지 않으면 죽여버릴 거야! 복도까지 울리는 쉰 목소리에 점심을 먹고 복귀한 사무소 직원들이 조금 웅성거렸다.
코가는 예사롭지 않은 연습량으로 후배들을 괴롭혔다. 가벼운 마음으로 자신을 부른 게 아닌 이상 어중간한 무대로 넘어가고 싶지 않았다. 달리는 듯한 빠른 기타 연주에 더해 미성인 마사의 백보컬을 해야 했다. 강한 저음을 주로 쓰는 코가는 화음에서 너무 도드라지지 않게 성량을 조절하느라 진을 뺐다. 언데드 5집의 작곡에도 통 집중할 수 없어서 작업실에서는 거의 헤드 업 하이의 곡을 이렇게 변주하고 저렇게 다듬으며 시간을 보냈다. 야마켄이 죽기 전 엉성하게 짜두었던 셋리스트를 토대로 곡 사이의 진행이나 신곡의 공개 타이밍을 제안했다. 스도는 아르바이트하는 가게에 코가가 찾아와 동료 밴드와의 협주 연습을 제안하는 동안 오코노미야키를 볶으며 생각했다. ‘정말 고맙지만, 이렇게까지…?’
두문불출한 코가 때문에 팬들은 생존 신고라도 하라고 아우성쳤다. 사무소에서 잔소리가 날아와도 뭐든 올리겠다며 말만 하고 잊어버리는 탓에 이따금 아도니스가 SNS에 코가의 소식을 전했다. ‘오늘은 연습실에 케밥을 사 들고 갔다. 모두 열중해서 밥은 굶고 있었는지, 급하게 배를 채웠다. 무엇보다 건강이 우선이다. 먹고 힘내자.’ 부쩍 말라서 한층 예민해 보이는 코가의 사진이 함께 올라왔다.
그러는 동안 사쿠마 레이는 약속을 지켜 5집의 곡을 써 내렸다. 마음에 안 들면 코가가 퇴짜 놓고 자신이 알아서 쓰겠지, 하는 느슨한 생각이라 못 할 이유도 없었다. 내년 여름에나 나올 앨범이니 화끈한 곡으로 데모를 몇 개 녹음했다. 후배들이 안 그래도 심란한데 푹푹 늘어지는 곡은 쓰고 싶지 않았다. 오랜만에 작업하니 즐거워서 타이틀에는 꽤 힘을 줬다.
오랜만의 언데드 연습 스케쥴이었다. 레이는 유치원생이 공작 시간 작품을 자랑하듯 타이틀 데모를 틀어주었다. 어떤고, 굉장하지? 그런 얼굴이었다. 코가는 존경하는 선배의 노래에 언제나 끝내준다고 기운차게 답하는 후배지만, 그가 자신의 센스를 갈고 닦아갈수록 혹시 매몰찬 크리틱을 내놓지는 않을까 하고 두근두근 긴장되는 느낌도 있었다.
기대와 걱정을 배반하고 데모를 들은 코가의 반응은 묘하게 미지근했다.
“음역이 많이 높네.”
“그런가?”
레이는 김이 새버렸다. 아도니스와 카오루도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지르는 부분은 누가 봐도 코가 파트로 의식하고 쓰인 곡이었기 때문이다. 코가가 하이라이트 부분을 몇 번 다시 듣더니 적당히 따라 불렀다. 레이가 기타로 반주를 넣고, 아도니스가 허밍으로 화음을 넣었다. 세 번쯤 다시 불러볼 때, 후렴으로 넘어가는 고음에서 삑사리가 났다.
그렇게 높았나? 아니다. 레이가 코가의 음역을 모르지는 않는다. 컨디션 관리도 프로의 자격이라고 엄격하게 말하던 코가 답지 않았다. 코가는 민망한지 목울대를 문지르며 조금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목이 좀 아파서.”
아도니스가 옆에서 보온병을 내밀었다. 아도니스는 최근 따뜻한 물을 챙겨 다니게 되었다. 가을이고 해서 건조해지는데, 연습이 많은 코가의 컨디션을 걱정한 탓이다. 카오루는 끙, 소리를 내며 물을 삼키는 코가의 상태를 살피고 물었다.
“감기인가? 요즘 너무 무리했잖아.”
“페스티벌 나가라고 부추긴 게 누군데?” 코가가 대꾸했다.
“앗, 미안해지네.” 카오루가 멋쩍게 웃었다.
“키를 낮출까?” 레이가 물었다.
“아니, 지금이 좋아. 마음에 들어. 딱 이 몸 스타일이라고. 역시 사쿠마 선배야!”
곡의 마무리를 다시 몇 번 돌려 들은 코가가 기분 좋게 웃었다. 그럴 줄 알았으면서 레이는 간신히 통과했다는 둥 너스레를 떨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아도니스만 눈꼬리를 내리며 코가에게 물을 한 잔 더 권했다.
아도니스가 자신을 걱정하는 것을 알고 있기에 코가는 바쁜 와중에도 그가 부르면 으레 한가한 듯 응했다. 그러니 ‘가츠동을 사주겠다’라고 전화를 걸어왔을 때 밤샘 작업 후 자다 깨서 부스스한 모습에 모자만 눌러쓰고 나온 것이다. 높은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한낮의 해가 병원 간판을 눈부시게 비췄다. 이비인후과. 음성 클리닉.
“어이, 아도니스. 목감기 기운은 가라앉은 지 오래야.”
“혹시 모르니 검진을 받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다만….”
그래서, 이 몸이 병원에 혼자 안 갈까 봐 가츠동을 사준다고 꼬셔서 끌고 온 거란 말이야? 코가는 황당함에 태클도 걸지 못하고 병원에 들어가자며 고갯짓만 했다. 아도니스가 안도하며 미소 지었다. 성실하게 입구 옆 잡지 랙에서 클리닉의 시설을 소개하는 팸플릿을 주워 드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날 저녁, 검사 결과를 전해 들은 선배들은 안색이 창백해졌다. 반나절 동안 수용의 5단계를 거친 아도니스가 비교적 진정한 채로 말했다. “만성화가 되지 않은 경우에 성대 결절은 일단 보존적 치료로 상태를 지켜본다고 한다.”
“코가 군, 미안해. 내가 괜히 무리하게 만들어서….”
“이런, 본인이 담배를 피우는 게 아니었는데….”
두 사람은 하얗다 못해 파란 얼굴이 되어 초고속으로 자책했다.
“그딴 거랑 관계없다고…!”
“회복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음성 치료, 그러니까 말하지 않는 것이다.”
장본인이면서 수용의 2단계, 즉 분노도 완전히 넘어가지 못한 코가가 자책하는 두 사람에게 소리를 지르려다 가로막혔다. 아도니스가 단호한 얼굴로 어깨에 손을 올리자 코가는 씩씩거리며 화를 눌렀다.
그러고 보면 최근 쇳소리가 섞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가 늘 고함 지르는 걸 듣다 보면 사실 이러다 목이 상하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코가의 보컬 트레이너는 항상 걱정을 달고 다녔다. 주기적으로 검진받으라는 말이 아도니스 귀에라도 박힌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사무소에서 스케쥴은 일단 최대한 축소하고 오오가미가 내키는 선에서 발성 없이 진행할 수 있는 화보나 연주 위주로 잡아보겠다고 했다. 5집 발매는 내년 여름 예정이라 여유가 있으니 회복을 기대해야지. 내가 오오가미의 집에서 생활하면서 휴식과 연락, 식단을 도우려고 해. 술, 담배를 멀리하는 것뿐만 아니라 먹는 음식과 시간도 중요하다고 하니까……”
그러니까 묵언 수행하는 중처럼 살라는 얘기다. 아도니스가 대변인이 된 것처럼 향후의 일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했다. 레이는 아도니스의 말을 들으면서 어느 정도 침착함을 되찾아 활동은 건강이 회복되었을 때 하는 것이고, 연주나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으면 좋은 경과를 보이는 대로 복귀할 수 있을 거라고 어른스럽게 위로했다. 누가 뭐래도 언데드이지 않은가. 그들이 돌아올 자리는 항상 있다. 오오가미 코가의 존재감은 몇 개월 정도 활동이 없다고 희미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코가 군은 노래하지 말라고 하면 힘들어할 것 같아. 아냐?”
레이와 다르게 한참 눈을 내리깔고 수심에 잠겨있던 카오루가 말했다. 사려 깊은데도 정곡을 찔러 속이 쓰린 말이었다. 코가는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어차피 말을 할 수 없기도 했다.
“가을 페스티벌은 어떻게 할 생각인고?” 레이가 물었다.
코가가 무심하게 허공에 기타 치는 시늉을 했다. 백 보컬 없이 기타 연주만. 무카이에게 백 보컬을 맡기면 자신 없어 하면서도 결국 해낼 것이다. 앨범 작업이 미뤄져 멤버들에게 미안해야 했지만, 사실 앨범이 제일 급한 건 본인이었으니 딱히 그렇지만도 않았다. 코가는 머리털을 벅벅 헝클며 짜증을 냈다. 성급해선 안 된다. 갈 길이 멀었다.
“휴우…. 자식이 먼저 요양원에 들어가게 될 줄은 몰랐구먼.”
레이의 농담에 코가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소리 없이 주먹을 휘둘렀고, 아도니스가 말렸다. 카오루가 웃음을 터뜨렸다.
코가의 일상은 무척 조용해졌다. 주변의 소리는 그대로인데 자신이 묵언하는 것만으로 이렇게 고요해지다니, 조금 놀랐다. 레온도 일상에서 자주 짖지 않는 편이고, 스케쥴이 없으니 전화가 울릴 일도 없었다. TV는 번잡스러워서 좋아하지 않았고, 음악은 괜히 가슴이 불타오를까 봐 로큰롤을 피해 평소 잘 듣지 않는 뉴에이지나 클래식을 틀었다.
술이나 담배는 원래도 좋아하지 않지만, 커피까지 잃은 것은 조금 섭섭했을지도 모른다. 대신 차에 취미를 들였다. 날씨나 기분에 따라 아도니스가 적당히 차를 내주었다. 그가 다도를 배울 때 별 시시한 취미를 골랐다고 무시했는데, 꽤 큰 도움이 되었다. 코와 혀를 아주 부드럽게 자극하는 차로 따뜻하게 적시고 나면 목이 한결 편했다. 기름진 음식도 피하는 것이 좋다기에 고기를 좋아하는 아도니스마저 덩달아 담백한 식물성 식단을 챙기게 되었다. 꼭 그럴 필요 없다고 했더니, 제법 단호한 투로 자신도 함께 견디겠다고 선언했다.
의외인 것은 아도니스의 소리였다. 과묵해 보여도 자신 앞에서 수다스럽다는 걸 아는데, 코가처럼 말을 줄이기 시작했다. 일방향 소통은 싫은 모양이었다. 아도니스를 따라 수어를 배워두길 잘했다. 코가가 서툴게나마 수어로 대화를 시작하자 아도니스는 기쁜 듯 응했다. 처음에는 답답해서 필담이 나을지 생각했지만, 심심해진 일상에 배움의 재미가 있었다. 코가가 뜻을 모르는 표현이 나오면 아도니스는 그 뜻만 음성으로 설명해 주었다. 아도니스의 입으로만 나오는 단어들을 모으면 재미있는 동시처럼 들렸다. 언젠가 가사에 쓰고 싶었다.
평온한 일상과 대조되게 코가의 작업은 잘 풀리지 않았다. 헤드셋을 쓰고 기타를 들고 노래를 짜내는 것이 엉킨 실타래를 영원히 푸는 행위처럼 느껴졌다. 머릿속에 맴도는 멜로디가 있어서 같은 구절만 계속 반복해 치고 기록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초라하고 뻔한 프레이즈 하나였다. 노래로 불러보면 감이 올 것도 같은데, 그러면 안 됐고, 어차피 소리도 잘 나오지 않았다.
아도니스는 코가의 짜증이 건강에 영향을 줄까 염려해서 조급해하지 말라며 달랬지만, 그럴수록 코가는 붕 뜬 자신의 시간을 어디에라도 휘두르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음반 매장에 가서 아무 밴드의 신곡을 전부 듣고 서있거나 카오루네 라이브 하우스에 죽치고 앉아 우롱차만 잔뜩 마시고 오기도 했다. 그렇지만 코가에게 영감은 쓰레기를 태운다고 나타나는 게 아니었다.
좋은 노래를 쓰고자 했다면 진작 세 곡은 나왔을 터였다. 죽은 친구에 대해 노래해야 하고 그게 시시한 곡이어선 안 되므로 힘든 것이다. 좌절의 늪에서 정점을 올려다볼 때 수월하게 느껴질 리가 없다.
가슴이 꽉 막혀 먹먹하던 어느 오후, 코가는 처음부터 다시 쓰려고 노트 반절을 찢어냈고, 악보 프로그램은 저장하지 않은 채로 종료해 버렸다. 그가 부산스럽게 움직이는데도 레온은 허벅지에 등을 붙이고 누워 조금 입맛을 다실 뿐이었다. 기타마저 치워버린 코가가 레온의 배 위로 고개를 떨어뜨렸다. 따뜻한 체온이 기분을 매만져주었다.
‘레온, 네 녀석은 평생 죽지 마. 그런 노래는 절대 쓰고 싶지 않으니까.’
소리 없이 속삭였다. 숨결에 간지러워진 레온이 버둥거렸다. 코가가 떨어지지 않자 축축한 혓바닥으로 그의 얼굴을 잔뜩 핥았다. 코가는 그대로 드러누워 헨드릭스의 데뷔 앨범 『Are You Experienced』를 재생했다. 노란 미국 반이라, 첫 트랙으로 「Purple Haze」가 흘러나왔다. 코가는 평소와 다르게 손을 바꿔서, 허공에 대고 연주를 따라 쳐보았다. 아무 의미 없는 행위에 어쩐지 즐거움이 피어올랐다.
그러는 동안 목 상태는 조금씩 괜찮아져서, 앞으로 성대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할 발성 트레이닝 스케쥴이 잡혔다. 목 쓰는 법을 고쳐야 한다니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레이가 ‘코가는 말하는 방식을 바꾸려면 일단 성격을 고쳐야 한다’고 농담한 탓에 더 열불이 나기도 했다. 발성 교정을 하는 선생은 고루하고 무뚝뚝한 사람으로, 코가가 무슨 소리라도 낼라치면 손을 올려 중지시켰다. 노래를 다시 하기는커녕, ‘아’만 몇 번 울리다가 그마저도 퇴짜를 맞아댔다. 코가가 잠깐 휴식을 취하겠다며 치료실을 뛰쳐나가려는데, 문밖을 아도니스가 가로막고 서 있었다.
‘오오가미. 차라도 마시면서 해.’
보온병을 내밀고는 화사하게 웃으며 손으로 말했다. 코가는 치료실 밖으로 한 발짝도 나서지 못하고 다시 트레이닝을 이어가야 했다.
발성 트레이닝 후에는 선배들이 경과를 듣고 싶어 해서 언데드의 넷이 모였다. 후배가 침울해할까 걱정해 바쁜 와중에도 만나는 날이 부쩍 많아졌다. 말을 삼가야 하는 코가는 모임이 귀찮고 어렵기도 했다. 웬만하면 필담을 하려 했지만, 그마저도 귀찮은 날엔 아도니스가 자신의 마음을 짐작해서 대변인 행세를 하도록 두었다.
코가는 점점 아도니스에게만 수어로 말하게 되었다. 아도니스는 처음에 통역을 해주다가 코가와의 대화에 집중하면 말을 멈추고 수어를 썼다. 레이는 수어를 알지만 굳이 참여하지 않고 내버려두면서 자신이 아는 화제가 나올 때만 조금씩 말을 얹었다. 카오루는 레이의 말로 그 대화 내용을 짐작할 뿐이었다.
오늘도 코가는 소리 없이 발성 트레이닝에 대해 욕을 했다. 아도니스는 수어로 그를 달랬고, 레이는 언젠가 거쳐야 하는 일이니 성실히 임하라고 일렀다. 카오루는 말이 없었다. 레이가 옆에서 얼굴을 굳히고 앉은 카오루를 의식했다.
“선생이 많이 엄한 모양이야.” 레이가 카오루에게 전했다.
“아아, 그래.” 카오루가 심드렁하게 답했다.
‘왜 그래?’ 코가가 손과 입 모양으로 말했다.
‘하카제 선배, 무슨 일 있나?’ 아도니스가 손으로 물었다.
눈동자가 흔들리며 잠시 말이 없던 카오루가 가방에서 뭔가 꺼내더니 테이블에 소리 나도록 내려놓았다. 일본 수어 첫걸음. 레이가 보자마자 웃음을 터뜨렸다. “기특하구먼.”
“기특한 게 아니야. 셋이 나만 빼놓고 대화하잖아. 외롭고 불쾌하다고.” 카오루는 투덜거렸다.
“저…정말 미안하다, 하카제 선배. 소외감을 느끼고 있는 줄은….”
아도니스가 쩔쩔매며 눈썹을 축 늘어뜨렸다. 레이를 따라 낄낄 웃던 코가는 검지로 책을 두드리곤 고개를 저었다. 코가의 손을 따라 책을 본 아도니스도 처진 눈썹이 그대로인 채 슬쩍 미소 짓고 말았다.
“무슨 뜻이야?” 카오루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게, 우리가 쓰는 건 일본 수어가 아니다. 수어도 나라마다 다르게 쓰이거든. 미국 표준 수어인 ASL이야.” 아도니스가 설명해 주었다.
“뭐…그런 건 미리 말해줬으면 좋았잖아!”
“카오루 군이야말로 속상한 건 바로 말해주지 그랬나. 할아버지 가슴이 아프구먼.”
레이가 가슴 쓸어내리는 시늉을 했다.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다며 투덜거리는 카오루의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코가는 자신을 배려하다 일이 꼬인 것이 내심 미안해졌는데, 아도니스가 눈치 없이 조금 기쁜 기색을 내비쳤다.
“하카제 선배가 수어에 관심을 보여서 기쁘다. 언젠가 같이 공부하면 좋겠다. 나도 최근에 일본 수어를 공부하고 있거든. 미국 수어는 국제 표준 수화의 밑바탕이 되어서 유용하지만 일본의 농인들에게는…”
“아니, 아니. 잠깐…!”
카오루의 비명에 코가가 큰 소리로 웃지 않으려고 애쓰며 박장대소했다. 아주 오랜만에 네 사람이 모여 만담처럼 즐거운 날을 보냈다. 자신과 대화하고 싶어 말을 배우고 귀를 기울이는 이들을 보면 울적했던 일들은 어쩐지 사소하게 느껴졌다. 살아있는 동안에도 사람은 계속 죽었다가 되살아나는 법이다. 이거야말로 언데드다운 날이었다.
10월 31일. 말이 좋아 가을 페스티벌이지, 핼러윈을 겨냥해 다소 억지로 만든 지역 축제였다. 가을답게 재즈나 포크처럼 느긋하고 부드러운 장르의 밴드가 아니라 헤드 업 하이처럼 꽤 하드하고 엉뚱한 밴드가 라인업에 오른 데는 이유가 있었다. 유감이라면 핼러윈은 죽은 자의 영혼이 돌아온다는 날이고, 헤드 업 하이에는 얼마 전에 죽은 멤버가 있다는 점이었다.
“야마켄이 지켜보고 있으면 좋겠네요.” 긴장한 기색의 마사가 기타를 고쳐 맸다.
무섭잖아, 그러면. 코가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지켜보지 마. 진작 윤회해서 팔자 좋은 들개로 태어나거나 했어야지. 끈질기게 남아서 선배가 자기 자리를 꿰찬 것까지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지역 축제인 만큼 관객석에 로큰롤 마니아들만 가득하지는 않았다. 이 밴드를 모르는 사람도 있을 테고, 가족 단위로 오는 경우도 많으니 가사가 다정하고 기분 좋은 곡으로 이어갈 예정이었다.
가벼운 분위기의 첫 곡을 마치자 눌러쓴 모자 너머로 들쭉날쭉하도록 다양하게 웃는 얼굴들이 보였다. 코가는 야마켄의 가벼움과 낙천성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보려던 풍경은 여기에 있었다. 단순한 곡조에 빠른 연주, 유치할 정도로 솔직한 가사에는 누구든 웃길 바라는 희망이 담겨있었다. 외부인이니 무대에 너무 몰두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연주할수록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야마켄, 오늘은 내 몸을 빌려줄게. 그의 곡에, 그의 연주에 빠져있으니 망자가 돌아오는 것 따위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마지막 곡으로는 사람들이 알만한 커버 곡을 골랐다. 야마켄이 좋아하던 노래라고 마사가 우기는 바람에 넣은, 오래된 록밴드의 노래였다.
동쪽, 서쪽 고속으로 날아서
베이스와 기타와 드럼과 꿈을 태우고
라이브 하우스에 도착해
기름이 떨어지더라도 밀어줄 거야, 괜찮아…
별을 보면서, 언젠가 큰 별이 되자
그런 농담을 하며 큰 소리로 웃었어…
마사는 고운 목소리로 바보처럼 노래했다. 그 노래를 부르는 세 사람은 모두 웃고 있었다. 야마켄과의 다짐과 꿈과 우정을 생각하며. 코가는 조금 울 것 같기도 했고, 따라서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자신의 것이 아닌 관중들을 쭉 둘러보는데 한 곳에 시선이 멈췄다. 아도니스가 펜스 모퉁이에서 자신처럼 모자를 눌러쓰고 무대를 감상하고 있었다. 얼굴에는 어김없이 웃음이 걸려 있었다. 저 관객만은 자신의 것이라고 코가는 자신했다. 아도니스를 향해 주먹을 뻗자 그도 마주 뻗어왔다. 주먹이 닿지 않고 부딪쳤다.
그렇게 인사를 마칠 때까지 환하게 웃던 마사는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울기 시작했다. 오열을 터뜨리는 모습에 누구도 놀라지 않았고 어떤 말도 필요 없었다. 코가는 자기 자리가 아닌 곳에서 줄곧 도망치고 싶었지만 결국 무게를 견뎌내었고, 구토감에 위액을 쏟아내는 마사의 등을 문질러 주었다. 아도니스가 데리러 올 때까지 그는 후배들을 지키고 서 있었다.
그 가을 페스티벌 이후로도 3인 체제를 유지하고 있던 헤드 업 하이에는 결국 새 기타리스트가 생겼다. 멤버가 죽어서 빈자리는 누구에게든 부담스러운지 오디션으로는 영 구해지지 않아 한동안 해체나 다른 밴드에 흡수되는 것을 논의했으나, 세 사람 모두 야마켄의 유산을 저버리는 것만큼은 타협할 수 없었다. 마사의 기본만 겨우 하는 기타 실력으로는 절대 메이저 소속사의 부름을 받을 수 없을 거라며 코가가 또 발품을 팔았다. 오지랖으로도, 마당발이기로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오오가미 코가다.
코가가 꽂은 기타리스트, 마에다 코헤이는 아이돌 연습생 출신으로 코가 보다 세 살 많은 선배였다. 기타 실력이 지나치게 뛰어나서 밴드로 데뷔하게 되었으나, 외모가 좋다고 프런트맨으로 세우자니 노래 실력은 또 미묘했던 것이다. 게다가 묘하게 한량 기질이 있어 미적대다가 아이돌이든 밴드든 불나방처럼 달려들기에 적합한 나이는 지나버린 선배였다. 본인은 소속사 연습생들에게 곡을 팔거나 기타 강습을 도는 수수한 생활로 만족하고 있었는데, 좋은 자질을 가지고 별로 이룬 게 없어 애먼 코가만 속이 타들어 가던 참이었다.
괜한 짓을 하는 게 아닐까, 싸우고 밴드가 뿔뿔이 흩어지는 건 아닐까 걱정했지만 의외로 마에다 선배는 나이나 실력 차이를 극복하고 그들에게로 녹아들었다. 원만한 성격과 나름의 성숙함 덕분인지 스도와 무카이, 마사는 마에다 선배를 꽤 의지하게 되었다. 기타 실력만큼은 아주 좋으니 초보 밴드의 단순한 곡들을 거뜬히 소화하는 건 물론이었다.
야마켄이 없는 헤드 업 하이가 유행가를 척척 내놓을 작곡의 귀재들은 아니었으니 3집까지는 요원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야마켄이 작곡해 둔 너덧 곡에 마에다 선배가 갖고 있던 곡 두어 개가 더해지니 꽤 그럴듯한 리스트가 만들어졌는지 마사의 열정에 불이 붙었다. 날이 추워지는 것도 모르고 네 사람은 작곡에 열중하더니, 머지않아 코가에게 3집의 데모를 선보였다.
코가는 음반을 듣고 몹시 흥분했다. 그러나 바보들이 너무 들뜰까 봐 일부러 티 내지 않았다. 1집, 2집의 음악에서 열정은 더해졌고 어설픔은 줄었다. 여전히 기교파는 아니지만 타이틀 곡에 그만한 화려함이 있었다. 팔랑팔랑 가볍던 음악에 어느샌가 파워가 생겨있었다.
자신은 곡 하나를 완성하지 못해서 머리를 싸매고 있는데, 상실을 딛고 순식간에 도약하고 있는 그들이 부러울 지경이었다.
“조금 이를 수도 있지만, 12월에 바로 발매하려고 해요. 그럼 연말연시 라이브에서 헤드라이너 몇 번은 할 수 있겠죠.” 스도가 신나서 말했다.
코가는 속이 터질 뻔했다. 조금은 들뜰 필요가 있었다. 스마트폰 메모장에 적었다.
‘전국 투어.’
코가는 엉망인 기타를 손질하고 있었다. 야마켄의 유품이었다. 처음 기타를 도로 받아왔을 때는 지독한 사용감에 화가 났다. 그래서 수리점에 보내 부품도 싹 갈아버리고 리피니쉬를 해서 새것처럼 번쩍이게 만들어줄까 하다가, 어쩐지 그래서는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웃기는 꼬락서니를 유지하는 편이 야마켄을 더 오래 추억할 수 있을 터였다. 어차피 못 쓸 기타인데 자신의 손으로 쓸만하게 만들어 본다면 또 멋진 도전이지 않겠는가.
기타 넥은 앞으로 살짝 굽어있었다. 이럴 경우 코드를 잡을 때 힘이 들어가는데, 야마켄은 손힘이 쓸데없이 좋아서 어느 정도 이상 휘어질 때까지 눈치채지 못했던 것 같다. 집이 습했거나, 비를 맞고 다녔던 거겠지. 렌치로 트러스 로드를 조여 넥을 조정했다. 과감하게 손봤다간 실수할 것 같기도 했고, 릴리프 상태로 두기 위해 아주 미세한 차이를 두며 천천히 조였다. 코가의 손에 맞게 두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여기저기 긁히고 까진 보디는 멋으로 유지하되, 거슬리는 곳이 없도록 사포를 세 종류 정도 써서 매끈하게 다듬었다. 긁힌 자국이 완만하게 깎여가며 모래사막 같은 무늬가 생겼다. 그 위에 니트로 래커를 뿌리고, 말리고, 사포질하고, 뿌리고, 말리고, 사포질했다. 호흡기가 걱정되어서 한 달에 걸쳐 아주 신중하게 피니쉬를 했다.
부품은 볼륨 외에도 낡은 걸 교체하기로 했다. 최대한 원래와 같은 사양으로 두기 위해 똑같은 부품을 구하느라 또 고생했다. 결국에는 악기 전문 상가 사장님들과 친분을 유지한 보람이 있었다. 픽가드는 동테이프로 쉴딩을 다시 했고, 배선은 평소 좋아하는 작업인 만큼 정연하게 마무리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손으로 정교한 작업을 했더니 마음을 가라앉히고, 곡을 쓰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다.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던 멜로디와 떠오르지 않던 가사도 래커 피니쉬 처럼 한 겹씩 곡 위로 올라갔다. 어떤 때는 영감이 벼락 맞듯 내려오지 않아도 곡이 완성된다는 걸 처음 배웠다.
그렇게 공을 들여 다듬고 조립까지 마무리하자 꽤 번듯하고 개성 있는 전문가의 기타가 되었다. 눈이 아릴 정도로 오래 기타를 들여다보고 있으니 더 이상 초라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모래바람이 부는 땅에 짙은 태양이 뜨는 모습을 담은 한 폭의 거대한 그림 같았다.
‘어때?’
아도니스에게 보여주니 슬며시 고개를 기울이고 감상했다.
‘이런 기타는 처음 본다. 멋진데.’
그는 한참 기타를 바라보고 손가락으로 조금씩 쓸어보며 코가를 뿌듯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물어왔다.
‘연주해 줄래?’
그것만큼 쉬운 부탁도 없었다. 코가가 스트랩을 어깨에 걸었다.
‘그 곡 완성했으니까, 들려줄게.’
손으로 말하고는 목을 조금 가다듬었다. 발성 트레이닝 때를 빼면 몇 주나 노래하지 않았다. 코가는 한참 동안 전주를 반복하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노래했다.…먼 공터로 갈까, 아니면 강가에…
아도니스는 오랜만에 듣는 코가의 목소리에 손끝, 발끝까지 피가 도는 것을 느꼈다. 다치고 회복하는 과정에 있으면서 오히려 더 좋은 소리가 난다고 생각했다. 더 오를 곳이 없다고 여겼는데 그의 노래는 더 높은 곳으로 조금씩 기어오르고 있었다.
반복되는 후렴은 알기 쉬워서 아도니스가 조심스레 화음을 더했다. 그가 쓴 곡에서 솔직함이 보일 때가 가장 좋았다. 코가는 인생에서 가장 취약한 때에 가장 솔직한 이야기를 전하기로 했다. 그러니 아도니스는 그를 존경할 수밖에 없었다.
노래가 끝나고, 아도니스는 박수 대신 손을 움직여 말했다.
‘오오가미. 좋은 노래야.’
코가가 쑥스럽게 웃자 아도니스는 진지한 얼굴로 손동작을 크게 반복했다.
‘정말 좋은 노래야.’
여섯 개 도시를 돌며 여덟 번의 공연을 하는 헤드 업 하이의 전국 투어 첫날이었다. 코가는 더 이상 간섭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자신을 밴드에 꽂아 넣었으니 첫 공연에 힘을 좀 보태라는 마에다 선배의 강요에 가까운 부탁이 있었다. 하지만 티켓 수요가 천 장을 웃도는 밴드의 게스트로 언데드 이름을 걸었다간 참사가 일어날 것이므로 오오가미 코가는 도쿄 공연 한정으로 포스터에 쓰이지 않은 깜짝 게스트가 되었다.
공연은 휘황찬란한 등장이나 인사 코멘트 없이 어둠 속에서 강한 조명이 내리며 1집 타이틀로 막을 열었다. 틈새가 딱 맞는 호흡을 자랑하는 베이스와 드럼, 이전과 비슷한 듯하면서 무척 테크니컬해진 기타 위로 마사의 호소력 있는 목소리가 정점을 찍었다. 해체하지 않기로 다짐한 헤드 업 하이는 꽤 날카롭게 벼려졌다. 오랜 팬들도 요즘의 그들은 낯설지만, 변화가 나쁘지 않다고 평가하고 있었다. 중심이었던 야마켄이 빠지고 그 의지를 잇기 위해 또 통하는 길을 찾아낸 것이다. 그렇게 꼭 한 곡 같은 세 곡이 메들리로 이어졌다. 드디어 악기의 울림이 멎고 첫 MC 타임이 찾아오자, 관객들은 우선 환호를 보냈다. 해체하지 않고 살아 돌아온 밴드에게.
“투어의 첫 공연이기도 하지만요. 오늘은 우리의 첫 기타리스트, 켄타의 백일제가 됩니다. 켄타를 사랑했던 분도, 잘 모르는 분도, 모두 켄타에게 작별 인사를 해주세요. 그래야 켄타도 마음 편히 지옥에 가거나, 믹 재거의 사생아로 태어나거나, 평화와 고요 속에 영원히 묻혀있겠죠. 개인적으로는, 좀비로 되살아나서 다시 곡을 좀 써줬으면 좋겠습니다.”
마사가 숨을 고르며 웃었다. 공연장에 있는 모두가 짓궂은 농담에 애정 어린 웃음과 눈물을 터뜨릴 만큼 상처는 아물어있었다.
“그래서 부두술을 해달라고 부른 사람이 있어요. 스페셜 게스트, ‘언데드’의 오오가미 코가와 오토가리 아도니스입니다.”
사람들이 환호하거나 놀랐다. 마사가 무대 옆으로 손짓했다.
“부두술 따위 안 하니까.” 다른 마이크가 화답하듯 울렸다.
코가와 아도니스는 심심하게도 무대 위로 걸어서 올랐다. 헤드 업 하이의 멤버들은 가볍게 주먹을 부딪친 후 무대를 내려가고, 베이스와 드럼의 세션만 두 사람을 보조하러 올라왔다. 차림새도 평범했고 꽤 간소한 게스트 무대였다.
아직 메이저도 아니고, 이제 막 3집이 나온 밴드의 투어 무대에 깜짝 게스트로 언데드의 두 사람이 오르자 사람들은 들뜬 듯 기대했다. 어떤 이들은 스마트폰을 켜서 사진을 마구 찍어댔고, SNS에 빠르게 소식을 전했다. 가을 페스티벌 이후로 또 헤드 업 하이의 무대에 오른 것이 팬들에게는 꽤 중요한 이야깃거리일 것이다. 이미 가을 페스티벌의 일로 코가의 친분과, 야마자와 켄타의 사망 소식이 조금은 화제가 되었다.
코가는 그러지 않았으면 했다. 이 일들에서는 어디까지나 자신이 주인공이 아니었다. 그래서 가타부타 말을 덧붙일 것 없이 곧바로 자신이 해야 할 일에 헌신했다. 노래하고 연주하는 것.
「IMMORAL WORLD」, 「Nightless World」, 그리고 「Resurrection of Soul」이 이어졌다. 이제 베테랑 가수라고 할 수 있는 두 사람은 선배들의 빈자리에도 위축되지 않았다. 평소 하지 않는 파트를 즐기기까지 했다. 영화나 드라마, 홍백가합전에서 불린 노래로 골라 인디 밴드 팬에게도 익숙하도록 배려했다. 게스트가 분위기 띄우기에 충실해지자 관객들도 열띤 호응을 보냈다.
다만 마지막 곡은 모험이라고 할 수 있었다. 처음 선보이는 곡이고, 앞선 언데드의 화려한 곡들과 다른 스타일이기도 했다. 너무 많은 감정을 담아 작곡해서 절대로 부르고 싶지 않은 노래기도 했다. 「Resurrection of Soul」이 환호 속에서 마무리되자 코가는 아도니스에게 불안한 시선을 보냈다. 아도니스가 오른손 주먹에서 검지와 중지를 앞으로 뿌려 보였다. ‘괜찮아.’
코가는 용기를 내어 관객들을 둘러보았다. 즐기고 있는 얼굴들. 이제 그 얼굴에 침을 뱉어야 할 것이다.
“…야마켄에게 바칩니다. 「쓰레기 기타」.”
코가가 매고 있는 기타를 가슴께에 들고 통 통 두드려 보였다. 낡은 모습은 그대로지만 번듯하게 다듬어져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근사한 기타였다. 팬이라면 모두 그걸 맨 야마켄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을 터였다. 누군가는 입술을 깨물었고, 누군가는 주먹을 쳐들었다.
그 기타가 강렬한 전주로 운을 띄우자 베이스와 드럼이 차례로 따라 들어왔다. 친구에게 헌정하는 코가의 솔로곡이라 아도니스는 백 보컬을 맡았다. 전주가 길었으므로 아도니스는 관객들이 손뼉을 치도록 유도했다.
첫 소절. 코가가 입을 열었다.
……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세션도, 아도니스도 당황했지만, 티를 내지 않고 두 소절을 반복했다. 코가가 입을 닫으며 이를 갈았다. 얼굴을 질끈 일그러뜨리자 피가 빠지는 느낌을 받았다. 성대결절의 여파인가 하는 불안이 엄습했다. 노래가 나오지 않는다.
코가가 마이크를 피해 탄식을 토해냈다. 동시에, 아도니스의 목소리가 울렸다.
…먼 공터로 갈까, 아니면 강가에
악기들이 겨우 다음 소절을 연주할 수 있었다. 아도니스는 문턱에 걸려 멈춰 선 코가의 손을 잡고 노래를 향해 뛰어들었다. 코가가 노래의 첫 코드를 정한 날에도, 가사의 첫 단어를 썼던 날에도 줄곧 함께 있었다. 어떤 감정을 담아 불러야 하는지 코가 만큼이나 잘 알고 있다. 창법이나 퍼포먼스를 흉내 내서 알맞게 부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제 떠나고 없는 후배의 기타를 손질하고, 몇 날 며칠을 몰두해서 곡을 쓰고도, 노래의 첫 소절 대신 절망과 죄책감이 튀어나오고 마는 마음에 대해 알아서. 코가가 지닌 사랑에 대해 잘 알고 있어서….
아도니스가 시작을 노래하자 코가는 기타를 연주하면서 심호흡했다. 심장이 지나치게 빠르게 뛰고 있었다. 진흙탕에 처박히려는 무대를 자신의 파트너가 굳센 손으로 받아 건져 올렸다.
코가는 첫 후렴에서야 겨우 화음을 노래할 수 있었다. 후렴의 리프를 연주하며 몸을 한번 털었고, 식은땀이 흩어졌다. 기타가 비는 아주 잠깐의 순간에 아도니스의 어깨를 세게 쥐었다가 놓았다. 아도니스의 호흡도 무척 거칠어져 있었다. 그러나 눈이 마주쳤을 때, 그는 언제나처럼 아주 부드럽게 미소 지어 보였다. 코가는 또 자신이 한번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느꼈다.
이런 꼴사나운 모습을 봤다면 야마켄이 뒤풀이 내내 놀렸을 테지만, 죽은 자의 감상은 아무래도 좋았다. 코가는 삶을 다 쓰지 못하고 떠난 야마켄의 몫까지 열심히 꼴사나울 것이고, 답지 않게 즐거운 노래를 쓸 것이며, 쓰레기 기타를 닳아서 먼지가 될 때까지 연주할 것이었다. 인생 오십 년은 바보 같은 목소리로 쩌렁쩌렁 노래해야 했다. 한번 죽더니 아직도 되살아나지 못한 녀석에게 저주를 내리고 싶었다. 돌아오라고. 이 끔찍하게 혼란하고 두려운 무대에 돌아오라고.
얼굴에 눈물이 가득 흘렀다. 무심코 팔을 들어 눈물을 닦느라 스트로크가 흐트러졌다. 무대 위에서 어설픈 모습을 보이다니 실수라고 생각했지만, 눈앞이 흐려져 울렁여서 어쩔 수 없었다. 코가의 고통에 겨운 얼굴을 천 명이 지켜보았다. 흠뻑 젖고 짓이겨진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네 기타 내가 간직하고 있을 테니까!
다음에 다시 만나자
꼭 다시 만나자…
야마켄에게 헌정하는 노래인 만큼 단순한 멜로디가 반복되었고, 두 번째 후렴에서는 사람들이 조금씩 따라 불렀다. 코가와 함께 훌쩍이면서. 악기 없이 보컬만 울리는 노래의 마지막 후렴 반복에서는 아도니스의 부드럽고 따뜻한 멜로디와, 코가의 거칠게 파고드는 낮은 화음, 관객들의 애절한 그리움이 삼중주를 이루었다. 무대 뒤, 헤드 업 하이의 멤버들은 이어갈 공연에서 울지 않으려고 고개를 쳐들거나 눈을 감았다.
드럼이 마무리를 울렸다. 사람들의 함성이 노래처럼 이어졌다. 감사합니다! 코가와 아도니스, 두 사람이 마이크 없이도 우렁차게 외쳤다. 고개를 건성으로 꾸벅이고, 세션과 함께 무대를 달려 내려갔다. 코가에게 돌아온, 야마켄의 기타를 높이 쳐들고서.
대기실로 이어지는 어두컴컴한 복도는 밴드의 멤버들도 스태프들도 공연장으로 나가고 아주 고요했다. 두 사람은 아득히 멀어지는 환호성을 등지고 걸었다. 앞서가던 아도니스가 발걸음을 늦추었다. 모래 먼지가 구둣발 아래로 쓸렸다. 아도니스는 장거리 달리기를 뛴 것처럼 숨을 고르고 있었다. 어깨가 천천히, 크게 오르내렸다. 발걸음을 늦추지 않은 코가는 그대로 등에 부딪혔다. 열이 오른 머리가 목덜미에 얹히고 뜨거운 땀이 뒤섞였다. 멈추었던 눈물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투둑투둑. 지저분한 복도를 땀과 눈물이 적시고 있었다. 아도니스는 마지막으로 숨을 크게 한번 내쉬었다.
“노래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오오가미.”
코가가 그 등에 얼굴을 문질러 닦았다. 하하. 눈물이 가시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코가는 고개를 쳐들고 주먹으로 아도니스의 어깨를 두 번 두드렸다.
“남은 공연 보러 가자.”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하고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完
노래들
*은하철도의 밤 / GOING STEADY
*반딧불의 빛 (Auld Lang Syne)
*ひどく暑かった日のラヴソング / 爆風スラン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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